No, 12
홈페이지:http://www.arirangschool.or.kr
2004/5/31(월)
조회:4988
러시아 고려인 아리랑 "햇빛"  



                    동포들 애환 밴「고려아리랑」「아리랑고개」등 17종 발굴
                    현지「고려신문」에 아리랑찾는 광고 개재, 계속 조사 계획



러시아 연해주지역에서 구전되고 있는 카레이스키 아리랑과 민요가 처음으로 채록되어 햇빛을 보게 되었다.

정선아리랑연구소 진용선 소장과 춘천문화방송 이석용 아나운서, 정선군청 문화예술계 민경진, 전영걸씨로 구성된 연해주 아리랑 조사팀은 지난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러시아 하바로브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아르촘 등지의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아리랑」, 「밀양아리랑」, 「고려아리랑」 등 7종의 아리랑과 결혼식 때 신랑 신부를 위해 불러주던 「동무」, 「부모출상가」 등  15종의 민요를 고스란히 얻을 수 있었다.

구한말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많은 동포들이 이주했던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아리랑이 처음으로 빛을 보게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고난의 세월을 보낸 민족의 숨결이 귓전에 절절히 울리는 것 같아 감동도 각별하다.

이번 조사를 통해 한민족의 아리랑은 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리랑 가사가 변이되어 고려인들의 슬픔과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으로 표출된 「고려아리랑」이 처음으로 아르촘에서 발굴됐으며, 연해주 지역에서 불리는 여러 가지 노랫말의 「아리랑」과 「강원도아리랑」이 발견된 것도 큰 성과다. 이밖에 「동무」등 당시의 시대상을 말해주는 민요도 15종이나 채록되었다.


한편 이번 조사에 참여한 동포들은 남다른 사연을 안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유 웨라(64세) 할머니는 생후 일곱 달이 되던 1937년 우스리스크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해 농사를 짓고 힘겹게 살다가 96년도에 태를 묻은 우스리스크로 돌아왔으나 근거서류가 없어서 명예회복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강제이주 당해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에서 태어나 95년 하바로브스크에 와 살고있는 장 메리(59)씨는 어려서 부모님들이 고향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아리랑으로 속앓이를 풀곤 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나 생후 3달만에 엄마 등에 업혀 연해주 빨찌산스크에서 살다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김 알렉산드라(80세) 할머니도 10여 년 전 아르촘으로 돌아와 살지만 틈만 나면 목이 메어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었다. 이들 모두는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 자신을 찾지도 않는 고향에 대해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하나같이 「아리랑 고개」를 「아리랑 산(山)」이라고 했다.  

현재 연해주에서 아리랑은 고려인의 상징으로 알려져있다. 우수리스크에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최대 규모의 농장인 아리랑농장이 있고, 북한 피바다예술단 무용수 출신인 조영희씨가 지도하는 아리랑 가무단(당장 김 발레리야)이 고려인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고향의 노래로 슬픔과 기쁨을 담아 부르던 노래 아리랑은 노인단을 중심으로 전승될 뿐 이주 1세대와 2세대가 세상을 달리하면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정선아리랑연구소 진용선 소장은 『현재 칠 팔십대인 이주 2세대마저 세상을 떠나면 연해주지역에서 아리랑의 자취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만난 고려인 삼 사십대는 아리랑을 거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사라져가는 아리랑을 수집하기 위해 정선아리랑연구소에서는 오는 6월 18일부터 우수리스크 「고려신문」에 아리랑을 부르는 고려인들을 찾는 광고를 게재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얻은 고려인들의 아리랑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내년 한 두 차례 보충 조사를 한 후 책자와 CD로 펴낼 계획이다. 또한 고려인문화센터 관계자들과 협의해 연해주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고려인 아리랑 경연대회」도 펼쳐갈 계획도 세우고있다.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