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역사

아리랑의 어원

아리랑 종류

아리랑 고개

아리랑의 의미

 

 


 민요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이와 유사한 음성이 후렴에 들어있는 민요의 총칭”으로 남북을 통틀어 약 60여종 3천6백여 수에 이른다. 우리나라에는 평안도에 '서도 아리랑', 강원도에 '강원도 아리랑', '정선아리랑' 함경도에 '함경도 아리랑', '단천 아리랑', ‘어랑타령’ 경상도에 '밀양 아리랑', 전라도에 '진도 아리랑', 경기도에 '긴 아리랑' 등이 대표성을 띈 아리랑이고 그 밖에 지역마다 각기 다른 아리랑이 있다. 나라 밖으로도 우리민족이 사는 중국 땅에 ‘독립군 아리랑’, 러시아 땅에 ‘사할린 아리랑’ 등이 있다.
 각 지역마다 독특한 정서를 담은 이들 아리랑 가운데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은 우리나라 3대 아리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선 아라리'라고도 하는 정선 아리랑은 우리나라 아리랑 가운데 가사 수가 가장 많고 전승 보전이 잘
되고 있는 것으로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락 또한 느리고 구성져서 산간지방의 정서를 잘 담고있는 노래로 손색이 없다.

 일반적으로 정선 아리랑의 기원은 고려말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조선의 창업에 반대한 일곱 명의 신하
가 송도에서 지금의 정선 거칠현동으로 들어와 살면서 그들의 심정을 한시로 지어 율창으로 부른데서
비롯 되었다고 하나 이보다 훨씬 이전으로 유추하기도 한다. 정선 아리랑은 긴 아리랑과 자진아리랑,
그리고 엮음아리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긴 아리랑은 언제나 옛 왕조를 그리는 듯한 노래로 시작된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萬壽山)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이런 무거운 가사와는 달리 정선 아리랑에는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유난히도 많다. 정선군 북면 여량리 아우라지 나루터는 정선 아리랑에서 없어서는 안될 배경이 되었다.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깊은 사랑에 빠졌다. 처녀는 노란 동박꽃을 따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매일 유천리 싸리골로 다니며 총각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폭우로 강물이 불어 나룻배가 다니지 못하게 되자 만날 수 없게된 처녀 총각은 강가에 나와 쳐다보며 그리움을 담아 아리랑을 불렀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긴 아리랑 가사에 다 담지 못하는 삶의 응어리는 보다 빠른 가락의 자진아라리로 브르거나, 사설을 이야기하듯 촘촘하게 엮는 ‘엮음아라리’로 불렀다.

우리집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위에 엽전석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다녀오세요

영감은 할멈 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 웃전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 치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


 앞 부분은 사설로 촘촘 엮어가다가 밑줄 친 뒷부분에서는 다시 긴 아리랑 가락으로 부르는 엮음 아라리는 서양음악의 랩(Rap)과 거의 다를 바 없는 해학과 흥겨움의 골계미를 갖추고 있다.

 정선 아리랑이 담고있는 가사는 산을 넘고 강물 따라 흐르고 흘러 강원도, 경상도 등의 지역에서 또 다 른 아리랑을 꽃피웠다.

 정선에서는 매년 10월 초 정선아리랑제가 열리고 정선5일장이 서는 날이면 정선아리랑 창극 공연이 이어진다. 또 매주 수요일 정선아리랑전수회가 전수 교실을 열어 정선 아리랑의 계보를 다져가며 전수에 힘을 쏟고 있고, 정선아리랑학교가 사계절 문을 열어 다양하고 특성화된 프로그램으로 내·외국인들에게 정선아리랑을 알리고 있으며, 정선아리랑연구소에서는 정선아리랑을 비롯한 국내외 아리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해 학술적인 토대를 구축해오고 있다.



 


 동부지방 민요의 한 축을 이루는 밀양 아리랑은 빠른 장단이 많이 쓰여 경쾌하고 흥겨운 민요이다.
흔히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밀양 아리랑 가락에는 힘찬 세마치 장단의 경쾌함이 짙게 깔려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씨구 아라리가 났네

 하지만 밀양 아리랑은 그 흥겨움에 반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으스스한 전설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옛날 조선 명종 때 밀양 부사에게 아랑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한 관노가 아랑의 미모에 반해 사모하게 되었다. 어느 날 이 관노가 침모를 시켜 아랑을 영남루로 유인했다. 아랑이 루에 올라 달빛에 취해 있을 때 그 관노가 나타나 사랑을 고백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다.

 하지만 아랑이 저항을 하자 칼로 찔러 살해하고 암매장해 버렸다. 딸을 찾지 못한 부사가 서울로 올라 가고 난 후부터 새로 부임하는 부사는 원인 모르게 급사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다가 담이 큰 부사가 부임하여 아랑귀신을 만나 자초지종을 알게 되고 죄인을 찾아 처벌하여 아랑의 원한을 달래 주었다는 이야기다.

 아랑의 정절을 기려 밀양의 부녀들이 부르던 노래가 '아랑가'였는데, 그것이 변하여 밀양 아리랑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남 밀양에서는 밀양 아리랑의 근원 설화인 아랑의 넋을 추모하는 아랑제를 매년 음력 4월 16일에
열고 있으며, 1999년 밀양아리랑보존연합회가 구성되어 활발한 보존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민요는 보통 음악구조가 단순하고 가락이 서정적이지만 판소리와 산조를 키워낸 남도의 진도 아리랑은 특유의 장중한 맛을 낸다. 진도 아리랑이 주는 정서의 농도와 예술적인 정취는 이미 2백만 관객이 넘게 관람을 한 영화 '서편제'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전라도의 산과 들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딸과 아들이 장구 치고 춤추며 부르던 진도 아리랑은 많은 아리랑 중에서 가락이 유연하고 마디마디 넘어가는 면에서 유려함을 느낄 수 있다. 또 표현하기 힘들만큼의 묘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난다

주로 잦은 중모리 장단으로 부르는 진도 아리랑은 슬프다 싶으면 한없이 슬프고 구성진 가락 같기도 하고, 멋스럽다 싶으면 한없이 흥겹게 느껴지는 가락이다.
그래서 슬픔에서 기쁨으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넘나드는 풍부한 인간 감정을 고루 담고있는 민요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진도 아리랑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 느낌을 달리할 수 있는 무한한 융통성과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남 진도에서는 1985년부터 진도 아리랑타령보존회가 구성되어원형 보존 운동을 활발히 펴고 있으며, 2000년 아리랑자료 관의문을 열었다.

이와 함께 2004년 완공예정으로 임회면 귀성리에 아리랑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참고문헌

  진용선, 『함께하는 아리랑』, 정선아리랑학교, 1999.